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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한지톡톡권영애
2008. 6. 15. 11:43
테니스 지존은 누구?…페더러 vs 나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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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 트로피도 나달 것이다(그랜드슬램 단식 11회 정상 밟은 비욘 보리)” “윔블던 최강자는 페더러다(전 세계랭킹 1위 레이튼 휴이트)” 라파엘 나달이냐 로저 페더러냐. ‘테니스 지존’ 경쟁이 스포츠계를 후끈 달구고 있다. 판세는 그야말로 백중세. 실력차도 박빙인데다 주변의 평가도 두 갈래다. 일단 흐름은 나달 쪽이다. 프랑스오픈 제패로 단단히 기가 올라 있다. 분수령은 오는 23일 영국 윔블던에서 막을 올리는 ‘윔블던 타이틀’이다. 윔블던은 사실 페더러의 텃밭이다. 작년까지 5년 연속 우승. 최근 2년간 윔블던 결승에서 맞붙은 전적도 2승의 페더러가 절대 우위다. 신문을 볼 때 누구 이름을 먼저 쓰냐에 대해서도 신경이 거슬린다는 두 테니스 황제. 하지만 하늘 아래 ‘황제’는 단 한명이다. 과연 누가 마지막에 웃을까. ‘나달 딜레마’에 빠진 페더러
이번 경기 총 시간은 1시간48분. 프랑스 오픈 결승전 경기로는 1980년 이후 28년 만에 최소 시간 기록이다. 페더러 약세를 뒷받침하는 기록은 또 있다. 이번 결승에서 페더러가 승리로 이끈 세트는 4게임. 1977년 브라이언 고트프리드(3게임) 이후 31년 만에 가장 적은 게임을 따낸 준우승자로 남게 된 것이다. 최근 전적도 ‘테니스 지존 페더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나달과 역대 전적은 6승 11패로 약세. 특히 클레이 코트에선 1승9패로 완벽한 열세다. 페더러에겐 끊임없는 나달의 진화가 두렵기만 하다. ‘나달 딜레마’라는 비아냥 섞인 표현까지 나온다. 기 싸움 뿐만 아니다. 전술 싸움에서도 페더러는 밀리고 있다. 사실 페더러는 지난해부터 ‘타도 나달’을 외쳐 왔다. 나달의 백핸드 약점을 공략하기 위해 자신의 주무기인 백핸드 공격에 ‘다운 더 라인(사이드 라인에 떨구는 직선공격)’을 접목한 나달 전용 신무기를 개발한 것. 왼손잡이인 나달의 백핸드 허점을 노린 전술이다. 하지만 나달은 또 한번 진화했다.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나달은 한동안 수비 위주였던 자신의 백핸드를 보다 공격적으로 바꿨고 때로는 재빨리 돌아선 뒤 포핸드로 맞받아쳐 페더러의 뒤통수를 쳤다. 더 큰 패착은 ‘타도 나달’에 대한 히스테리성 반응이다. 스스로 나달에 대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것이다. 요즘 페더러의 머릿 속에는 온통 나달 뿐이다. ATP 투어 통산 16승 가운데 15승을 클레이코트에서 일궈낸 호세 히구에라스(55)를 코치로 영입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 나온 극약 처방이라는 관측이다. 결과는 참혹하다. 전성기 때 페더러의 창조적인 플레이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대신 그 자리에 나달의 플레이를 의식한 어줍잖은 형태의 경기 패턴이 페더러의 발목을 잡게 됐다는 분석이다. 페더러가 지긋지긋한 나달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윔블던 6연패의 꿈은 자칫 ‘한여름밤의 꿈’으로 끝날 수 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나달
그런 면에서 나달은 요즘 상한가다. 경기력도 멘탈도 최고점을 찍고 있다. 나달의 코치는 “프랑스 오픈에 임할 때 부터 나달은 ‘페더러를 이기는 것보다는 대회 4연패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왔을 정도였다”며 “그만큼 ‘멘탈’에서 페더르를 확실히 앞서고 있다”고 말한다. 겸손도 나달의 강점이다. 그는 한번도 ‘넘버 1’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프랑스 오픈 4연패 위업을 달성한 뒤에도 “나는 넘버 2일 뿐이다. 그것도 넘버 1에 가까운 넘버 2가 아니라 넘버 3에 가까운 넘버2”라고 자신을 낮췄다. 행여 페더러의 마음이 상할까봐 우승 세리머니도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넘어야 할 벽도 있다. ‘클레이 코트 전용’이라는 꼬리표를 떼야 한다. 테니스 경기는 3종류의 코트에서 열린다. 프랑스오픈의 클레이 코트, US오픈과 호주오픈이 열리는 하드코트, 윔블던이 열리는 잔디코트다. 코트마다 공의 빠르기가 모두 다르다. 클레이코트의 경우 탄성계수가 낮아 상대 코트에서 바운드된 뒤 속도가 느리다. 공이 높이 튀어 강서버의 위력이 반감되는 대신 스트로크 플레이어가 유리하다. 공격적인 네트 어프로치의 효과 역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엔드라인 뒤에서 끈질기게 공을 받아내는 선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클레이코트는 나달에게 최적화된 ‘앞마당’이다. 나달은 “클레이코트라면 어떤 공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만약 하드코트에서 80개의 공을 받아냈다면, 클레이코트에서는 95개를 받아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나달은 스피드와 지구력 만큼은 최상이다. 클레이코트에서 나달의 플레이는 일정하다. 항상 엔드라인 뒤쪽에서 모든 공을 받아낸다. 나달의 좌우폭 움직임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넓다. 나달과 2차례 맞대결을 펼친 이형택(32·삼성증권)은 “클레이 코트에서 그는 정말 강한 지구력을 뽐낸다. 동에 번쩍 서에서 번쩍 해도 지치질 않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문제는 다른 코트다. 현 세계 랭킹 1위 페더러는 그랜드슬램대회 타이틀을 12차례나 따낸 반면 나달은 프랑스오픈에서만 4개를 따냈을 뿐 다른 메이저대회 우승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흙의 황제’를 넘어 끊임없이 진화하는 나달. 그가 진정한 ‘황제’로 등극할 지 전세계 스포츠 팬들의 이목이 윔블던으로 쏠리고 있다. [신익수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33호(08.06.23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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