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산책길

희망의 레시피 중에서

한지톡톡권영애 2019. 7. 6. 12:44

아내의 밥상


출장지에서 앞당겨 집에 왔더니

아내 혼자 밥을 먹고 있다

놀라 얼른 감춘 밥상 위

맨밥에 달랑 김치 몇 조각

어머, 예고도 없이 벌써 왔어요

당신이 없으면

반찬 걱정을 안 해 대충 먹어요

김칫국물이 해일처럼

와락 내 허파로 쏟아지는 저녁


-

김지태




새치


귀 밑에 돋은 새치를

족집게로 뽑다 객적게 웃었다


빳빳하게 곤두선 새치 몇 올을

야멸차게 뽑아내고

앞머리를 쓸어올리니

아뿔싸,드문드문 박힌 흰 머리카락

새치가 아니고 세월이었다


-

이충희




희망


내 창엔 방충망을 치지 않았다

바람이 드나들지 못할까봐

해맑은 햇살이 걸릴까봐


내 창엔 방충말을 치지 않았다

날벌레들 부드러운 날개 찢길까봐

가느다란 다리 다칠까봐


살고자 버르적대는 가녀린 것들을 위해

기도가 저절로 나올 때가 있다

눈물이 저절로 나올 때가 있다


나에게도 희망이 보일 때가 있다


-

노명순




친구에게


큰 눈에는 거짓이 없고

작은 말소리에는 진실이 없나니

친구야 나를 맞을 때는

너에 두 눈 동공이

화등잔 만 했음 한다


진실은 눈에 담겨 있고

거짓은 입에 담겨 있나니

친구야 나를 맞을 때는

실눈으로 달콤한 인사

건네지 않았음 한다.


-

류수인




희망에게


눈물이 날 때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봐

나비 한 마리

허공에 환한 날개짓하며

다만 삶을 불태우고 있어.


-

이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