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산책길

그때 그 나비는

한지톡톡권영애 2020. 5. 19. 12:47

그때 그 나비는





시집 한 권을 서서 다 읽는 동안
뒤쪽 낮은 의자에서 나비들이 소근거린다

나의 숨소리는 마지막 행간을 더듬는다

나비들이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하다

반세기쯤 젊은 꽃으로 나비를 불러본다

청년의 어깨에 기댄 그녀, 긴 생머리에 살굿빛 양볼
슬몃 온몸 붉어지는 봄이다

시간이 훔쳐간 아스라한 분홍빛
누워있던 저린 글자가 시집 속에서 뛰어나온다

저 나비의 흰 날개에서 한 송이 꽃이 된 봄날이다


- 오현정, 시 '그때 그 나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