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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풍경

칭기스칸의 리디십혁명

한지톡톡권영애 2008. 6. 8. 14:10

 

 

<<전문가 서평>>

 

김은환 수석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
■ 21세기 노마드는 칭기스칸을 원하고 있다

<칭기즈칸의 리더십 혁명>은 저자의 일련의 칭기즈칸 경영서의 일환이다. 저자는 이미 <밀레니엄 칭기즈칸>, 등의 저서를 내놓은 바 있다. 일련의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영웅 칭기즈칸의 행적으로부터 현대 경영자에게 주는 시사점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도출하고자 한다. 단 5년, 10년이 지나도 "옛날 것"으로 치부되는 변화의 시대에 1,000년 전의 영웅으로부터 시사점을 얻으려는 노력이 이채롭다. 물론 저자는 칭기즈칸을 "옛 것"으로 보려는 태도에 대하여 반기를 든다.

「중요한 것은 그가 여전히 미래에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유목민이라는 사실이다. ... 21세기의 노마드는 칭기즈칸을 원하고 있다.(18쪽)」

칭기즈칸이 오늘날 소위 “디지털 노마드”의 상징적 아이콘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소위 “디지털 노마드論者”들은 현대의 인터넷을 기마문명에, 광대한 스텝을 사이버 공간에 비유한다. 관료적인 대규모 조직의 정규직 샐러리맨은 농경민과 등치되고 전문성을 갖춘 프리랜서는 유목민과 동일시된다. 군돌라 앵리슈(Gundula Englisch)는 잡노마드(job nomad)라는 용어를 제창하고 이를 ‘직업을 따라 유랑하는 유목민’이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한동안 유행하던 부르조아적 보헤미안 보보스(Bobos)와는 또 구별된다고 하는데 엄밀한 개념은 논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러한 논의는 대규모의 관료적 조직이 점차 퇴조하고 개성과 다양성이 중시되는 시대로 이행됨에 따른 인간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창의적이고 개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인간집단은 때로는 X세대, N세대 등 신세대로 이해되기도 하고 때로는 잡노마드라는 특정 행태의 직업군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 유목민적 라이프스타일의 부활을 리드한다
유목민적 특성을 지닌 인류의 출현은 마케팅의 새로운 대상으로서, 또는 새로운 기업 구성원으로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들이 종래와는 다른 라이프스타일, 다른 구매행동, 또는 다른 경력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종래의 마케팅, 종래의 인사관리가 타당성을 잃고 있다는 논의가 제기되었다. 기업은 유목민적 고객을 포착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 자체가 유목민이 되어야 한다는 다소 비약적인 주장도 출현했다. 마치 칭기즈칸이 광대한 스텝을 정복해 나가듯이, 새로운 사이버 공간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속도전과 정보전을 중시하는 몽고군의 전략 특성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칭기즈칸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국내만의 것은 아니다. 정보화 사회와 유목민 사회와의 비유는 전세계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1995년 워싱턴 포스트지는 대대적인 칭기즈칸 특집 기사를 실으면서 몽고제국의 역참제를 현대의 인터넷에 비유하며 극찬했다. 몽고는 역참제를 통해 정보전달 속도를 극대화하면서 정착문명 국가들을 압도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칭기즈칸에 대한 관심에 부응하여 칭기즈칸이 현대 경영에 주는 시사점을 다각적으로 제시한다. 본서는 특히 칭기즈칸의 리더십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칭기즈칸이 군사전략가로서 탁월하다는 점은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칭기즈칸 사후 그에 대한 많은 기사들이 신비화되거나 미화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베일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의 신화 뒷면에는 한 사람의 거인이 버티고 서 있음이 느껴진다. 즉 그는 조작된 영웅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실제 걸출했던 전략가요 정치가임을 인정할만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 유목민적 라이프스타일의 부활을 리드한다
저자는 칭기즈칸의 리더십을 다섯 챕터로 요약하고 있다. 저자의 제목을 그대로 인용하면, 1. 순리를 좇는다 2. 비전을 제시한다 3. 길을 만든다 4. 프로마니아를 키운다 5. 성공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다섯 가지다. 제목만 보아서는 그렇게 ‘유목민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칭기즈칸에 대한 저자의 열정에 비해서는 다소 평범한 시사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몽골비사>, <빌리크(칭기즈칸 어록)> 등의 사료에서 칭기즈칸의 생생한 육성을 유려한 우리 말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핏 보면 평범한 시사점인데 칭기즈칸의 목소리로 들으면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말하라”는 절에서는 부하들에게 말할 때 상대방의 가슴을 정확하게 겨냥하는 말을 하라는 교훈이 제시된다. 그 예로서 칭기즈칸은 자신의 동치 보오르초 장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림자밖에는 친구가 없을 때, 너는 친구가 되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꼬리 말고는 다른 채찍도 없을 때, 너는 꼬리가 되어 내 심장을 편안하게 했다. - 빌리크(64쪽)」

칭기즈칸이 자신의 부하 장수의 약점을 날카롭게 파악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그는 자신의 용장 예순베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나의 부하 예순베이는 참으로 훌륭한 용사다. 아무리 싸워도 지치지 않고, 피곤한 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모든 아랫사람들이 자기 같은 줄 안다. 자기만큼 하지 못하면 버럭 화를 낸다. 그런 사람은 절대 지휘관이 될 수 없다. - 빌리크(34쪽)」

리더로서 하위 관리자의 리더십에 대한 명쾌한 통찰이다. 사람을 잘 알고 썼다는 점에서 칭기즈칸의 탁월함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생전에 칭기즈칸은 스텝 전역, 북중국, 콰레즘을 정복했으며 통치했다. 이렇게 광대한 영역의 작전을 위해서는 부하 장수에 대한 전폭적인 권한위양이 불가피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부하의 역량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했다.
이점에서 그의 능력은 경이적인 것이었다. 이것을 저자는 “세상은 인간 속에 들어있다”는 말로 표현했다. 부하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뜻을 오류없이 전달하는 능력, 이것이 몽고제국을 일으킨 힘 중의 하나였다. 칭기즈칸은 원정에 오르는 부하 수베에테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등을 지고 있어도 서로 마주보는 것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까운 데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간다면 하늘도 그대들에게 가호를 내릴 것이다.(35쪽)」

저자의 번역은 유려하고 아름다워서 칭기즈칸의 육성을 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저자는 서문에서 재밌는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 저자의 상상력으로 쓴 <칭기즈칸의 편지>라는 글이 실제 칭기즈칸이 남긴 말로 오해되어 인터넷에 유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음의 글은 필자도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중략)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내가 살던 땅에서는 시든 나무마다 비린내, 마른 나무마다 누린내만 났다.(중략)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꼬리 말고는 채찍도 없는 데서 자랐다.(이하생략)」

이 멋진 글은 실제 칭기즈칸의 글로 오인되었다. 저자는 이 글이 자신이 <밀레니엄맨>이란 책에 직접 써 넣은 글임을 밝히고 있다. 물론 칭기즈칸의 어록 등에서 일부 표현이 삽입되기는 했으나 엄연히 저자의 글이다. 이것을 보다보니, 본문 중에도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칭기즈칸의 인용문 중 일부는 혹시 저자의 창작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천년 전 영웅의 육성이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고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정말 유목민의 시대가 도래한 탓일까. 아니면 저자가 현대적 감각을 살려 의역을 했기 때문일까.

■ 정착민적 체제와 유목적 사고방식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혁신가
저자는 서문에서 「정착사회의 의식과 습성들이 불편한 점으로 작용하면서 새로운 이동 형의 문명이 도래하기 시작했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것은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과감한 결론인 듯 하다. 일부 직업 시장에서 ‘잡노마드’라는 인간군이 출현한 것은 인정할 수 있다고 해도, 아직도 대기업, 은행, 정부기관 등 대규모 조직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세계는 유목민 사회로 이행한다기보다는 그만큼 다양해지고, 획일적인 몇 가지 유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사회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온건한 결론일 것이다.
또한 칭기즈칸이 건설한 대제국이 단명하지 않은 것은 몽고가 정착문명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이다. 칭기즈칸은 정착국가를 약탈하기를 원하지 않고 정복하기를 원했다. 칭기즈칸 이전의 유목민들은 정착국가를 완전히 정복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 여진족의 금나라가 몽고제국보다 한 발 앞서 북송 지역을 정복한 것이 최초였다. 정착국가의 정복은 유목민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왜냐하면 유목민은 정착국가를 경영할만한 노하우와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은 유목민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착민의 통치 기술과 지배체제를 유목민의 강인한 군사력과 결합시키고자 시도한 혁신적 정치가였다. 오웬 라티모어(Owen Lattimore)는 유목 제국을 창건한 지도자들이 예외없이 스텝의 중심부가 아니라 정착국가의 인접 지역(marginal region)에서 성장했음에 주목하였다. 즉 강력한 유목세력은 스텝지대와 정착지대의 사회정치구조를 모두 습득한 인물에 의해 주도되었던 것이다. 그의 가설의 진위는 물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적어도 칭기즈칸이 정착문명의 요소를 열정적으로 소화했음은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특히 그는 군사기술에 있어서 몽골 특유의 속도전, 기습전술과 함께 정착문명의 군사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가 탕구트나 금나라를 공격할 때 사용한 공성기술은 전적으로 정착국가의 군사기술자를 등용하여 개발한 것이다.

유목민이 정착국가를 건설할 때 최대의 약점은 유능한 관료군의 확보와 권력승계였다. 문서를 작성하고 복잡한 절차에 따라 일을 추진하는 관료제의 운영은 기마민족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날의 프리랜서가 대기업 직장생활을 못 견뎌내듯이 몽골의 전사들은 궁중의 관료생활을 거부했다. 따라서 몽고제국은 정착민 중에서 관료들을 충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착민 관료와 몽골 지배계급간의 연대와 협력이 원만하게 이루어짐으로써 비로소 몽고제국은 번영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즉 유목민의 일방적 득세가 아닌, 유목민 전사와 정착민 관료와의 협력이 제국의 근간이 되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가 권력 승계였다. 세습보다는 군사적 탁월성에 의한 승계에 익숙한 유목민에게 지배자가 사망할 때마다 누가 계승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내란의 위기가 초래되었다. 여기서 특정 가문의 장자가 권력을 계승한다는 정착문명의 룰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 어렵게 진행되었다. 쿠빌라이 대에 이르러 칭기즈칸의 막내 톨루이 가문의 황제권이 확립됨으로써 몽고제국은 안정되게 된다.(물론 그 안정기간은 짧았다.)
칭기즈칸이 죽기 직전 형제를 불러 모아 화살을 부러뜨리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지만, 실제로 칭기즈칸의 아들들은 몇 번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애를 지켰다. 형제들이 우애를 지켰다는 점에서 칭기즈칸은 성공한 아버지였으며 또한 성공적인 정착국가의 시조였다.
칭기즈칸의 유목민, 정착민 간의 조화 정책은 그의 후예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쿠빌라이는 “말 위에서 세계를 정복할 수 있지만, 말 위에서 세계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한고조 유방의 원칙을 받아들였다. 몽고제국의 일부 과격파는 한때 중국 본토를 전부 목초지로 바꾸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전 농경사회를 유목사회화하자는 급진론은 결국 채택되지 않았다.

유목민의 은유가 어디까지나 은유임을 인정하다면 이 책은 음미할 만한 시사점을 다수 제시하고 있다. 우유부단한 리더십, 기득권의 옹호 등 정착민적 속성의 부정적 양상을 극복하기 위해 유목민의 모델은 분명한 존재의의를 갖는다. 개념적인 정교함이나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기법보다, 칭기즈칸의 묵직한 육성을 통해서 나약해지려는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주려는 저자의 메시지는 몽고의 시인 푸렙도르지의 싯귀처럼 우리 가슴에 남는다.

「몽골의 말발굽 소리가 대륙의 양끝을 진동시키고 유럽은 맨발로 뜨거운 재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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