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한지화(韓紙畵) 작가 문복철(文福喆)의 생애
홍현철(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 교사)
한지작가이자 교육자인 문복철은 1941년 3월 전북 대야에서 출생해 만주로 건너가 생활하다가 6세에 고국의 고향땅으로 귀국했다. 1947년 전북 군산에서 중앙초등학교에 진학했고, 1953년 군산중학교에 입학한 후에 야구부에서 활동했다. 우수한 선수였던 그는 결국 1956년 서울 경기공고에 스카우트되어 상경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힘든 운동선수 생활과 타향살이에 힘겨워했고 결국 건강이 나빠져 2학년 때 군산고등학교로 다시 전학을 오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전쟁직후 군산항은 군산의 신문화를 이끌던 나병재, 고은, 원용봉 ,김신웅 시인, 박상현(음악인)씨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문복철은 나병재에게 그림공부를 시작하였고, 이러한 여러 예술인과 지식인들과의 생활이 문복철의 예술적 환경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9년 문복철은 홍익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했고, 김환기 교수를 만나 새로운 예술의 길에 접어든다.
1962년 대학 2학년 때, 대학의 수업은 구상계열 작품이 대부분이었고 추상계열의 작품은 아직 설익은 분위기를 타고 있을 때 문복철은 비구상작으로 국전 출품을 하여 <4월의 모뉴망>(4,19 사건을 표현함)으로 첫 입선을 하게 된다.
한편 무동인 그룹은 문복철을 비롯하여 홍익대 회화과 출신과 서울대 회화과 출신들이 모여 1962년에 결성했으며 2회전(1967.6.20~26)은 한국 최초의 오브제 전시로, 수술용 의료기구, 깨진 그릇, 고무장갑, 방독면 등을 동원하여 전시하였다. 이들은 그 뒤를 이어 <청년작가연립전>에 참가했으며, 음향 작업을 했던 진익상과 임단(임명진)이 새로 가담하여 활동하면서 새로운 미술 사조에 접근하며 작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를 가지게 된다.
대학졸업 후 군입대, 그리고 제대 이후엔 고향으로 내려와 이리고등학교 교사로 근무, 그 뒤 군산상고로 발령받아 상업미술을 가르쳤다.
1969년에는 유학(儒學)을 숭상하는 집안의 차인영과 결혼을 했다. 유학자 집안의 분위기와 더불어 집안 잔치에 참여한 실력 있는 소리꾼, 춤꾼들의 영향은 마침내 작가의 마지막 작품의 주제인 ‘삶의 춤’과 ‘삶의 소리’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결혼 후 작가보다는 생활인으로 가족을 돌보았으나 1976년 2월 군산에서 은박지와 유화로 그린 첫 전시를 시작으로 끼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1979년 9월에는 서울미술회관에서 서양화를 동양화 재료인 한지로만 표현해 낸 "대류전"을 열었다.
문복철은 1984년 홍익대학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후 1988년 전주 우석대학 미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1988년에는 한일교류전을 기획했고, 전북 현대 미술제를 열어 지방의 예술 문화 발전을 꾀했다.
2000년 문복철은 1월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지만, 전주 한지축제 비디오영상, 합죽선, 태극선, 한지 등을 챙겨 이태리 현지에서 홍보 활동을 하며 IAPMA의 한국유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문복철은 종이대회 1년을 앞두고 2003년 5월 29일 세상을 떠난다. 남길 작품들의 관리를 걱정하고 "작가로, 교육자로, 가장으로 나는 여한이 없이 살았다"고 말하며 담담하게 삶을 마무리 했다.
2004년 IAPMA가 전주에서 열렸다. 유족은 세계협회본부에 문복철의 개인전을 요청해 회기중 소리문화전당 1홀에서 특별전시를 했다. 전시의 부제는 작가의 아들 일경이 제안한 "E lucevan le stelle Estelle"였다. 그 후 한지작가 문복철이 전북에서 사랑을 받으며 2010년 서울 한원 미술관 문복철 추모전 , 2014년 군산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군산출신 작가전, 전주 교동미술관 특별 초대전으로 이어지며 몇몇 기획전에 출품도 계속되고 있다.
문복철(文福喆)의 작품세계
문복철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종이’와 ‘추상성’이다. 그는 캔버스에 종이를 겹겹이 붙여 나가는 추상표현양식의 회화적 작업을 30여년 넘게 해왔다. 종이 그 자체의 독특한 물질의 특성, 그리고 작가 자신의 행위성을 통한 조형예술로 주목받아 왓다. 그의 작품은 추상표현의 시각적 탐구였으며 그는 작품을 통해 형상보다 더 중요한 재료의 중요성을 발견하였다.
실험기와 앵포르멜 추상(1962-1978) : 다다와 샤머니즘
문복철은 대학 재학 중인 1962년 10월 국전에 앵포르멜 추상화로 입선 했다. 그러나 곧 변화를 모색하였는데 1962년 대학 재학 중 무동인(無同人) 그룹에 참여하면서 추상이 아닌 오브제를 사용한 네오 다다적 경향이 그것이다. 실험기로 보이는 이시기에 그는 앵포르멜에서 벗어나 콜라주와 오브제 작업을 진행하였고 1967년 7월 한국 청년작가연립전에서 발표한 해프닝을 비롯하여 실험적 작품들을 제작하고 보여준다. 그러나 실험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고향에서 7-8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앵포르멜 추상을 다시 시도한다.
실험기를 지나 앵포르멜 계열의 작품을 발표한 1976년의 작품들은 첫 개인전을 통해 보여준 [기념비 1976]의 연작으로서 주제가 말해주듯이 석기시대의 유물 모뉴망 같은 것을 이차원적인 평면으로 옮기거나 풍화된 돌의 무늬를 공간 속에 재구성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오랜 비바람에 시달린 비석의 기하학적인 재구성을 역시 이차원적인 평면으로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작품의 이미지를 주로 은박지 같은 재료를 사용해서 특이한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작품의 색감은 백색 회색계통을 주조로 하면서 그곳에다 강한 원색을 장식적으로 배치한다.
화면구성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재래적인 유화의 수법에서 쓰는 것과 같이 온 화면을 메꾸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화면의 적당한 위치에 설정하고 나머지 공간을 여백공간으로 살리는 점이다. 이 수법은 동양화 문인화 계열의 작품에서 비롯한 것으로서 그 공간처리에 매혹을 느끼고서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단색조 추상의 한지작업 시기(1979-87) : 객체에의 의지
캔버스에 은박지를 사용하면서 형태의 비정형성을 실험하였던 그는 1979년 처음으로 한지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79년 물리학에서 공기와 물질의 변화를 만드는 상승기류를 뜻하는 [대류]라는 제목의 서울 첫 개인전은 한지 회화의 첫 출발로 중요한 시기가 된다. [대류]연작에는 한지와 모노크롬이 등장하는데 문복철에게 모노크롬은 한지의 자연 그대로의 표정을 잡아내는 방식이었다.
한지가 갖는 물질의 특성을 살리면서 제작된 [대류] 연작은 1983년 제3회 개인전에서 한층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작가는 한지라는 종이가 갖는 물성과 단색조 추상의 조형적 모색으로 자기 세계를 확립해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작가는 붓보다 손으로 작업하면서, 화면에 작고 큰 구멍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공간의 깊이를 생각하게 했다.
이미 지난 79년과 83년의 두 차례의 개인전을 통해서 그가 시도했던 것은 순전한 물질로서의 종이와 손에 의한 인간행위가 어떻게 종합될 수 있는가를, 특히 한지를 통해서 실험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지의 표정이 그의 작품 중심에 있었고 손이라는 인체의 직접적인 매개 수단에 의해 보다 직접적인 사물로서의 ‘표정’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시도는 하나의 존재로서의 사물에 귀일하려는 ‘객체 ’에의 의미를 표방하는 일로 보였다. 거기에는 작가의 주관을 개입시킬 위험이 있는 색채의 무게가 크게 차단되었고 그 대신 애초의 한지가 가지는 회백색의 질료적 표정이 손의 행위에 의해 호흡과 맥박의 리듬패턴을 획득함으로써 화면이 하나의 구체화된 사물로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작가는 종이의 물성이 가질 수 있는 그 자체의 표현성에 주목했는데 특히 한지가 물에 잘 용해됨으로써 그것이 작가의 존재와 쉽게 융화된다는 데 주목했다. 물론 한지의 물성을 드러냄에 있어서 작가의 심성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종이의 표정이 곧 작가의 심성 표현이라는 점에서 주관적인 국면을 내포한 엄연한 객관적인 국면을 보여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성의 객관적 국면에 있어서 작가의 주체는 그 가운데 은닉된 상태에 머물게 되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기하학적 추상과 한지작업 시기(1988-1991) : 주체에로의 복귀의 의지
1980년대 후반에 작가는 또 다른 실험 정신에 몰두 한다. 캔버스라는 사각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화를 추구하려는 미니멀리즘적 경향을 보였다. 이 시기에는 시공간의 표정을 일정한 형태인 삼각형이나 삼각형으로 된 나무틀 속에 가두어 넣어 사물의 또 다른 ‘내필공간’(<내공>으로 표현되는)을 엿보려고 한다. 이것은 한지의 물성이나 추상성이 갖는 개념이나 정신적 의미와는 다르다. 이 시기에 작가는 순전한 물질로서의 종이와 손에 의한 인간행위가 어떻게 종합될 수 있는가를 한지를 통해서 실험하려는 의도가 잘 보인다.
이처럼 실험을 통한 작품의 근본적 변화는 삼각형 내지는 삼각형의 틀의 도입과 색채의 파격적 사용에서 나타났다. 특히 금기시 되던 색채의 화려한 재등장은 그의 작업이 이미 사물의 주관적 이해의 틀 안으로 깊숙이 진입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아주 근본적인 것이다. 일시적이고 임의적으로 시도된 단순한 국부적 현상이 아니라 작가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의지의 표명에 깊이 관련된 것이다. 즉, <대류>에서 강조되었던 객체에의 의지가 아니라, 은닉된 작가 주체의 한계를 인지하고 자기 작품에 작가 자신을 ‘주체에로 복귀하려는 의지’가 뚜렷하게 감지되는 시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주체가 물성의 표면에 대거 부상해서 자신의 권리를 크게 강화할 수 있다는 확신일 것이다.
삶의 현실에서 느껴지는 아픔들은 흡사 60~70년대 젊은 날의 갈등만큼이나 작품에서 크게 작용하였고 표출 의지는 76년의 기념비에서 보였던 색채와 은박지의 교합이 한지와 색채와 변형된 형태로 의지를 표출하게 된다. 또한 작가 자신의 심층심리의 세계일 것으로 추측되는 ‘내필공간’에서 작가는 ‘생성과 소멸의 의식’, ‘접합과 분할의 기억들’, ‘형상과 비형상’과 같은 주관적 표현의 문제를 ‘허상과 실상’을 동반함으로써 삼각형 프레임을 사용하여 하나의 공간으로 구체화시킨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이 도입된 삼각형의 도상과 나무에 의한 프레임의 요소들이 모두 작가의 주관적 표현의 의지를 강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물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물성을 사용해서 주체에로의 복귀를 앞당길 수 있는 길이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단색조 추상의 한지작업 시기(1992-98) : [삶의 춤-붓질]과 [삶의 소리]
80년대 후반에 정신사적, 미학적 미술의 전개과정을 펼쳐 보이려 주체에로의 복귀의지를 강하게 보였던 작가는 삶의 소리에 나타난 자유로운 선과 색채의 추상표현을 90년대 초반에 선보인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다시금 한지작업에 나타난 기하학적 틀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내공 시리즈에서 보여준 계산된 구성이나 엄격한 균형보다 작가는 자유로운 표현을 더욱 중요시한다. 이것은 무절제의 구성 속에 완벽한 화면 질서를 찾고, 불균형 속에서 균형을 뛰어 넘는 새로운 공간인 것이다. ‘내필공간’의 그 너머를 작가는 알았고 새로운 탐구를 시작한다. 작가는 삶을 주제로 전개된 새로운 화면질서와 공간을 모색하는 조형적 특성을 새롭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작품들의 표면은 부드러우나, 붓질에 의한 터치와 행위의 흔적들은 강인한 표현으로 직접적으로 다가오며 적•청•황의 밝은 색 점들과 어우러진 행위의 흔적은 대지로부터 뛰쳐나오려는 생명의 씨앗을 연상시키곤 한다. 이러한 행위는 한지가 주는 표면 효과를 극대화시킨 느낌이다. 따라서 작가의 1990년대 한지 추상회화 작품은 문복철에겐 한지화의 절정기인 동시에 완숙기에 이른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그의 대표적 작품들이 제작되고, 아울러 한지 작업이 갖는 물성의 특성과 더불어 삶을 주제로 제작된다. 작가는 [삶의 춤]과 [삶의 소리] 연작에 관해 언급하기를 “이것은 서민 생활의 정서가 밴 육자배기 가락을 유희적이고, 작위적인 붓질로 표현한 것” 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이처럼 남도의 판소리와 연결시킨 [삶의 춤]과 [삶의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단색조 추상화를 완성시켰다. 또한 이 시기에 많은 영향력을 주었던 것은 젊은 날에 그가 기억하는 장인의 정서와 처갓집의 분위기에서 배어나온 삶과 풍류의 소산일 수도 있다.
후기 추상표현의 한지작업 시기(1999-2003) : 시간여행Time Travel
문복철의 후기 한지 작업은 ‘시간여행’ 이라는 제목(부제 : 강물이 흐르듯 무위의 시간여행)으로 생의 마지막 시기를 장식한다. 후기 그의 한지 작업은 양식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삶의 소리]와 같이 모노크롬 추상화로 한지나 닥지를 이용하여, 행위의 흔적을 묘법처럼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전체 구성이 반복된 선묘에서 벗어나 불규칙한 색 점들로 짧고 굵게 나타내기도 한다.
어찌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던 최종의 구현목표는 종이가 지닌 과묵한 물성, 그 응축성을 깨뜨리고 오염되고 황폐된 자연과 공해에 찌든 우리네 환경에 대한 경고를 보내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된다. 시원의 바다로 향해하듯 원초의 세계로 회귀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별은 빛나고
문복철(文福喆·1941~2003)은 한지의 아름다움에 남달리 천착하면서, 한지회화의 가능성을 꾸준히 탐색했던 작가다. 이런 이유로 영원한 한지작가 문복철은 고인이 된 후에도 많은 이의 뇌리에 자리잡고 있다. 작가로서 교육자로서 짭지만 긴 여정을 보낸 작가는 다시금 한지를 통해 재조명되어지기 시작한다.
격동의 시기에 자신의 의지를 작품을 통해 고뇌하고 한지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자신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통해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에 조형언어로 선보인 작가는 이제 별이 되어 빛나고 있다.
작가의 여정(1962~2003)에 나타난 작품은 분명코 한국적 미감과 정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현대미술의 추상 양식과 결합을 통하여 독자적 화풍을 이끌어낸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1960년대 초반 한국현대미술의 탄생시기에 전위미술가로서의 의식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새로운 조형의식을 만들어가며 1970년대 중반 한지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적 정서를 대변하는 한지 작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문복철의 독자적 예술세계의 형성은 순간이 아닌 평생의 작업으로 한지라는 물질과 심미적 행위가 합치되며 지속적인 탐구의 과정을 보낸 것이다.
문복철은 자아를 찾아 나서는 방법으로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노력했고 단색조의 관조적 성격과 환원적 표현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표출했다. 미적 대화를 이끌기 위해 문복철은 한지를 선택했고 오랜 시간 내면을 응시하며 결국 물질과 작가 자신의 접촉이 긴장감과 여유를 생각하게 하는 대화의 채널을 만들어냈다. 말년에는 지역과 지역의 정서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남도의 춤과 소리를 사랑하면서 삶의 춤과 소리를 표현하는 진솔함으로 우리 시대의 마지막 모더니스트이자 휴머니즘 작가로 남겨졌다. 우리는 그를 영원한 한지작가(韓紙作家) 문복철(文福喆)이라 부른다.
문복철(文福喆) 프로필
1941년 3월 29일 전북 군산 출생
1959년 2월 군산고등학교 졸업
1963.2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84. 8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졸업-마르셀 뒤샹의 작품세계
2003년 5월 29일 타계
[개인전]
1976. 2 문복철 전 (제일화랑, 군산)
1979. 9 문복철 전 (미술회관, 서울)
1983. 6 문복철 초대전 (현산미술관, 광주)
1988. 9 문복철 초대전 (백송화랑, 서울)
1989. 2 문복철 초대전 (Art House Gallery 반전, 일본)
1992. 9 문복철 초대전 (얼 화랑, 전주)
1996. 11 문복철 전 (미술회관, 서울)
[단체전 및 초대전]
1961. 10 제10회 국전 입선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
1962. 06 무동인전 (국립도화관 화랑, 서울)
1967. 07 한국청년작가연림전 (중앙공보관, 서울)
1967. 07 해프닝 발표 (중앙공보관, 서울)
1981. 12 "HONNAGE AUX ARTISTES INCONNUS" 초대전 (프랑스)
1986. 11 86 ETAJIMA INTERNATIONAL MAIL ART초대 (일본)
1988. 07 국제 현대미술초대전 (시민미술관, 반전, 일본)
1988. 09 '88올림픽 기념 서울 닥종이 작업전 (백송화랑기획, 서울)
1989. 01 오늘의 전북미술 초대전 (얼화랑기획, 전주)
1989. 08 한, 일 현대미술 교류전 (시립미술관, 반전, 일본)
1990. 08 제1회 한국한지작가협회전 (동숭아트센터, 서울)
1991. 01 한지 그 물성과 가변성 (토탈갤러리, 서울)
1991. 08 국제종이조형초대전 (시커트랠러리, 스위스)
1993. 02 한지-백지 의미전 (워커힐 미술관 기획, 서울)
1994. 04 한지의 조형적 재조명전 (예맥화랑기획, 서울)
1994. 05 제26회 전북미협대전 초대작품전 (예술회관, 전주)
1995. 04 지;한국화 일본전 (종로갤러리기획, 서울)
1995. 08 공간의 반란 67-95 (시립미술관, 서울)
1996. 05 한지-그 근원의 미학 (다도화랑 기획, 서울)
1998. 한지- 조형적해석 (워커힐미술관, 서울)
2000. 02 한지-21세기 한국성(인사동 갤러리, 서울)
2000. 08 국제종이조형협회 회의참가 '2004'전주대회유치 (이태리)
2000. 09 종이에서 조형까지-한국한지 작가 10년 논문집 발간및 심포지움 ( 문예진흥원 세미나실, 서울)
2001. 05 한지2001 (바탕골 미술관, 서울)
2001. 08 문복철 한지작업 매입소장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3. 04 한지조형작가 기획초대전 (갤러리 라메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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