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뇨인 온라인 모임 ‘당뇨와 건강’ 회원수 2만명
카페지기 염씨 “모임다운 모임, 정보다운 정보 공유”
바야흐로 ‘당뇨대란’이다. 당뇨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남녀노소, 직업, 계층을 불문하고 ‘아무나’가 타깃. 국민 5명 중 1명은 이미 ‘경고등’이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때문일까. 당뇨 관련 정보도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이렇게 하면 안 걸리고, 저렇게 하면 걸린다…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 그러나 정작 당뇨인들은 헷갈린다. “누구 말이, 무슨 보고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이에 <일요시사>는 온·오프라인에서 가장 깨끗하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인터넷 카페 ‘당뇨와 건강’운영자인 염동식씨의 경험담을 통해 ‘당뇨와의 전쟁’중인 당뇨인들의 애환과 희망을 들어봤다.
현대인의 대표적 성인병인 당뇨는 암, 간, 뇌혈관, 심장 등과 함께 ‘한국인 5대 사망 질병’으로 꼽힌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적절히 쓰이지 않아 몸 안에 당 성분이 쌓이는 질환. 대부분 잘못된 생활습관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른바 ‘생활병’또는 ‘습관병’이라고도 불린다.
현재 우리나라의 당뇨병 인구는 5백만명. 당뇨 전단계인 내당능장애를 가진 사람도 5백만명으로 추산된다. 국민 5분의1 정도인 1천만명이 당뇨병 내지는 ‘당뇨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특히 당뇨는 부유층에서 서민층으로, 노년층에서 젊은층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다. 문제는 당뇨 자체보다 합병증이 더 무섭다는 점이다. 자칫 방심하면 당 성분이 혈관을 타고 신체 각 기관에 해를 끼쳐 치명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심각할 경우 생명과도 직결된다.
국내 당뇨병 인구 5백만명‘부유⇒서민, 노년⇒청년’
하지만 당뇨의 발병 원인은 미스터리다. 아직까지 뚜렷한 예방이나 치료법이 없는 이유다. 현재 당뇨병 환자의 치료는 경구 혈당강하제나 인슐린 주사요법이 사용되고 있으나, 이런 치료법으론 사실상 완치가 어렵다.
염동식씨는 이같은 당뇨의 공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염씨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당뇨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당뇨인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바로 인터넷 카페 ‘당뇨와 건강’(cafe.naver.com/dangsamo)이다. 회원수가 무려 2만여명에 이른다.
눈에 띄는 점은 이 카페는 다른 질병 관련 카페에 비해 상업성 글이나 광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당뇨인들의 직접 체험을 통한 정보만 링크한다.
“‘서구병’이요? ‘부자병’이요? ‘도시병’이요? 모두 당뇨에 대한 잘못된 상식입니다. 이젠 남녀노소, 직업, 계층을 불문하고 당뇨의 늪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제대로 이해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항상 예방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올해 38세인 염씨는 당뇨 8년차(?). 그에게 ‘당뇨 전주곡’이 울린 것은 2000년부터다. 어느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온몸이 쑤셨다. 밥 먹고 물 한 모금 안 마신 그였지만, 돌연 목이 타기 시작했다. 허리와 다리의 힘이 빠졌고, 눈도 침침해졌다.
그러나 염씨는 그저 나이 탓으로 돌렸다. 이게 화근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조차 힘에 부칠 만큼 병세가 악화된 것.
“‘그냥 피곤해서 그렇겠지’라고 자위하면서 버텼죠. ‘계절 탓인가? 나이 탓인가?’란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직업이 밤새는 일이 비일비재한 프로게이머다 보니 그런 생각을 가질 만했죠. 그러나 아주 위험한 착각이었습니다.”
버티다 못한 염씨는 결국 2003년 8월 한 한의원을 찾아갔다.
“신장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한약을 좀 먹으면서 당분간 침을 맞으셔야 겠는데요….”

‘밑져야 본전인데 저거나 한번 해 볼까?’
우연히 혈당 측정을 한 염씨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혈당 수치 4백㎎/㎗. 정상인의 혈당은 공복시 1백㎎/㎗ 미만, 식후엔 1백40㎎/㎗ 미만이다. 반면 당뇨병 환자의 혈당은 공복시 1백20㎎/㎗ 이상, 식후 2백㎎/㎗ 이상이다. 염씨의 혈당은 이를 한참 웃도는 수치였다.
그는 곧바로 한 내과를 찾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염씨는 4백㎎/㎗란 수치의 심각성을 잘 몰랐다. 별 대수롭지 않다는 담당의사의 반응 때문이었다.
“혈당 수치가 높으니까 일단 약을 드세요.”
끝이었다. 의사의 처방은 정체 모를 약 몇 알이 전부였다. 당뇨에 대한 기초 지식이 전혀 없던 염씨는 의사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을 보냈다. 술도 계속 마시고, 밥도 그전과 똑같이 먹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처방약을 꾸준히 먹었지만, 혈당 수치는 여전히 1백60~2백30㎎/㎗ 사이를 오르내렸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염씨는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 말초신경합병증, 당뇨성망막증, 치주질환 등 합병증 판정까지 받았다.
이는 당뇨 환자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들이다. 말초신경합병증은 온 몸의 작은 정맥들이 손상되는 현상으로, 마비와 자통 같은 갖가지 통증을 수반하며 진전시 팔,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당뇨성망막증이란 망막의 미소혈관이 손상되는 것으로, 대부분의 환자는 시력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만약 방치하면 망막을 파괴해 실명에 이르게 된다. 망막증은 국내 성인 실명 원인 1위의 질환이기도 하다. 여기에 당뇨 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침 속 당 농도가 높아 치석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충치나 치주질환에 걸릴 확률도 높다.
“갑자기 목이 마르고, 허리 다리 힘이 쭈욱”
의사 설명에 잔뜩 겁을 먹은 염씨는 그날부로 당뇨 공부를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무서웠다. 염씨는 급한 마음에 당뇨 의학 서적들을 뒤졌고, 각종 사이트와 카페 등에도 가입해 자문을 구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의학 서적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역부족. 특히 기대를 걸었던 사이트와 카페들은 대부분 상업적으로 운영됐다. ‘좋은 글’의 고의삭제는 기본. 왜곡된 정보들도 넘쳤다. 게다가 거의 광고로 도배된 얌체 상술도 판을 쳤다.
“모임다운 모임이나, 정보다운 정보가 없었습니다. 당뇨뿐만 아니라 질병 관련 사이트와 카페들이 장사에만 혈안이었지요. 한마디로 ‘약 장사’에 불과했습니다.”
상업성에 염증을 느낀 염씨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심정으로 2003년부터 직접 새 카페 ‘당뇨와 건강’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 그저 몇몇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는 염씨의 바램은 어느덧 회원수 2만명에 이르는 집단으로 성장했다. 때문에 이젠 스태프 6명의 도움을 받는 형편이다.
한달에 한번씩 ‘정모’각자 습득 노하우 교류
물론 회비는 없다. 당뇨인 이거나 그 주변인이라면 아무나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은 카페나 한달에 한번 정기모임을 통해 정보를 나누는데, 주로 자신의 혈당관리 방법 등을 털어놓는다. 또 “이거 먹으니까 혈당 수치가 내려가더라, 저거 먹으니까 수치가 올라가더라” 등 당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먹거리도 주된 화두다. 자연히 이 과정에서 회원들은 각자의 노하우를 배운다.
카페엔 하루 20~30개의 질문들이 올라온다. 그러나 그는 글 한 줄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중복되고 반복되는 질문에도 거부는 없다. 1백%의 답변율을 자랑한다. 염씨 자신이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간파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눈에 띄는 점은 주요 회원 연령대가 20~30대란 사실이다. 젊은층이 무려 70%에 이른다는 게 염씨의 전언. 어린이들의 소아 당뇨 회원도 많고, 미혼 남녀도 수두룩하다. 아울러 임신성 당뇨 여성의 회원수가 최근 늘고 있다고 염씨는 전했다. 때문에 염씨는 카페에 따로 이들의 방을 만들었다.
“젊은 세대가 당뇨 선고를 받으면 노년층에 비해 더 많은 절망감에 사로잡힙니다. 병원에 가도 ‘젊은 사람이 어쩌다…’란 혀 차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죠. 이런 답답한 심정을 카페 회원들이 서로 토로·상담하고 있습니다.”
염씨의 닉네임은 ‘아르마’. 아마겟돈(Armageddon)의 앞 철자 ‘Arma’에서 힌트를 얻었다. ‘선과 악의 세력이 싸울 최후의 전쟁터’란 원래 뜻을 ‘당뇨와의 마지막 싸움’으로 확장 해석했다고 한다.
닉네임대로 염씨는 당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선 염씨는 ‘합병증의 덫’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말초신경합병증은 꾸준한 운동 등 몸관리를 통해 90% 이상 회복된 상태. 당뇨성망막증과 치주질환은 각각 레이저 치료와 의치 시술로 정상 수준이다. 지금은 인슐린 펌프를 착용, 혈당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그의 혈당 수치는 공복시 80~1백10㎎/㎗, 식후엔 1백40㎎/㎗ 이하다.
그렇다면 염씨의 당뇨 관리 노하우는 무엇일까. 그가 꼽은 ‘당뇨 비법’은 일반에 알려진 당뇨 상식과 다르지 않다. 체계적인 식이요법과 운동 프로그램이 그것. 혈당을 정상으로 유지하면서 스트레스 억제도 필수다. 이 중 하나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염씨는 지적했다. 철저한 자기관리가 예방과 치료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그렇다고 무리는 금물. 식사 전후, 운동 전후의 몸 상태를 꼭 체크해야 한다.
당뇨는 유지가 관건입니다. 채소위주와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당뇨. 희망은 있습니다. 최소한 암보단 낫죠. 어쨌든 관리만 잘하면 살잖아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당뇨인 각자가 당뇨 전문의가 되면 됩니다. 언젠가 당뇨 전문가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사는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글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사진 송원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