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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재발견

밥사랑공동체 대표 박희돈 목사

한지톡톡권영애 2009. 3. 30. 21:35

[제652호] ‘노숙인들의 큰형님’ 밥사랑공동체 대표 박희돈 목사
| 2008·07·08 09:15 |
남을 돕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만 갖고 되지 않는 게 봉사활동이다. 오죽하면 일반 법칙으로 여겨지는 ‘처음이 어렵고 두 번은 쉽다’는 것마저 적용되지 않는다. 남을 도울수록 도울 일들이 더욱 눈에 많이 들어오는 탓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전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요량이면 하루 24시간도 모자란다. 게다가 자연스레 금전적인 문제에 직면하기 일쑤. 남을 위한 봉사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작 자신을 위해 뛸 시간이 줄어드는 까닭에서다. 그러나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살아가는 이는 분명 존재한다. 서울 영등포 노숙인들의 대부로 꼽히는 밥사랑공동체 대표 박희돈 목사가 바로 그 주인공. 지난 6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식사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그를 직접 만나봤다.

꼴찌인생들의 행복충전…"내일은 쨍쨍 맑음”

“노숙인들과 함께 하는 나의 삶은 가장 큰 행복입니다.”
서울시 영등포역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는 노숙인들로부터 ‘큰형님’으로 불리는 밥사랑공동체 대표 박희돈 목사(길벗교회).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영등포역 인근 신길동에 자리잡은 노숙인공동체 ‘버팀목’에서였다.

박 목사는 첫 인상부터 남달랐다.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은 나이를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며 오른쪽 귀를 만지고 또 만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청각장애 3급 장애인이다. 그러나 대화를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세상에 이만한 사람이 없다. 진국 중에 진국이다. 청각장애인이 됐지만 구김살 하나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청각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6년전 노숙인을 위한 삶을 선택하고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어요. 이혼을 했고, 전 부인과 자식들은 미국으로 떠났죠. 그 과정의 스트레스성 충격으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요.”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불과 6년 전만 해도 대학교수, 원자력병원 원목을 지내며 매월 8백만원 이상을 벌어오던 가장이었다. 그런 그가 가족을 대신해 노숙인을 위해 살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박 목사가 노숙인들을 위해 ‘밥사랑공동체’를 만든 것은 운명적이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되지 않는다.
2002년 어느 날 새벽. 그는 지방에서 대학강의를 마치고 온 영등포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가 처음 본 것은 여성 노숙인이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찾는 모습이었다. 그는 허기에 찬 여성 노숙인의 모습을 보며 목사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없이 부족했던 자신을 발견했다. 그가 노숙인을 위해 살아가기로 한 이유다. 만약 허기를 채우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그의 운명은 지금과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는 않았을까.
현재 박 목사는 여성 노숙인을 보았던 6년전의 안타까웠던 느낌을 고이 간직한 채 ‘밥사랑공동체’를 설립,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노숙인을 들에게 6년 동안 꾸준히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또 최고의 음식을 지향하며 가능한 최고급 재료들로 매일 식단 구성에 나서는 것에 힘쓴다.
“노숙인들이라고 해서 남들이 안 먹는 것, 남들이 남긴 것 등을 먹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움직이고, 노력한다면 노숙인들에게도 최고의 식사를 제공할 수 있거든요. 또 노숙인들 중 요리를 했던 사람들이 직접 반찬을 고르고, 밥짓기에 참여해 더욱 맛있는 식사를 제공한다고 자부해요.”
실제 밥사랑공동체의 밥맛은 영등포역에서 무료급식을 벌이는 단체들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밥사랑공동체의 무료급식날에 맞춰 천안, 인천 등지에서 교통편을 이용해 올라오는 노숙인이 생길 정도. 매번 5백50인분의 식사를 만들지만 노숙인이 동료들을 배려하는 마음 등이 듬뿍 담겨 항상 최고의 맛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박 목사에게 노숙인들을 돕기 시작한 이후 생긴 변화는 ‘꼴지인생’에 대한 예찬이다. 늘 최고, 일등만을 지향해 온 것을 먼저 버렸다. 인생의 결승점에서 최고보다 중요한 것은 포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라톤 경기에서 목표 지점까지 기어오더라도, 남의 등에 업혀서라도 완주를 했을 때 ‘꼴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치고 쓰러진 이와 함께 온 이도 ‘꼴찌’로 불리겠지만 이런 몇몇의 사람들에 의해 세상이 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그는 꼴찌인생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행복’이라는 문장을 만들어 밥사랑공동체의 표어로 삼고 있다. 노숙인 집단이 사회로부터 외면 받고 있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목사에 따르면 노숙인들에 대한 사회복지에는 크나큰 맹점이 자리잡고 있다.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만 된다는 것이다. 삶의 가치, 생활의 의미가 배제된 물질적 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더욱이 이러한 일들의 상황이 계속적인 반복을 통해 노숙인들을 더욱 사회와 단절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복지분야는 사회현상-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노숙인 문제 중 가려진 부분,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예측하고 진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노숙인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주었을 경우 힘이 센 사람에게로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 그들 사이에서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무조건적인 물질적 지원은 노숙인들의 삶에 또 다른 문제점을 안겨주는 골칫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숙인들이 돈을 벌었을 때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동료들에게 술을 사주고, 밥을 사주는 거예요. 그들이 굶주린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바로 정입니다. 가족, 형제들로부터 받은 상처, 경쟁에서 실패를 경험을 통해 사회와 단절된 그들에게 의미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박 목사는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민관협동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무조건 꺼리기보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 목사는 노숙인에게 부족한 부분으로 꼽히는 ▲사람을 믿지 않는 것 ▲공동체 사회 일원으로의 책임 ▲ 뚜렷한 목표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또 저마다 노숙인이 되기 전 했던 일들을 선별, 적절한 일자리를 찾아 자활의지를 북돋아 주고 있다. 박 목사가 운영하는 ‘밥사랑공동체’가 기존의 비영리 사회복지 단체들과 차별화를 갖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노숙인들이 사회의 공동체 일원으로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사회복지라고 굳게 믿고 있는 박 목사. 그는 노숙인들을 위해 매일 따뜻한 밥과 정을 나누는 것은 물론 향후 노숙인들의 재활을 돕는 대안학교, 노숙인의 2세들을 위한 학습관 등을 설립하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불편한 몸을 이끌고 노숙인의 곁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따뜻한 사랑으로 밥 한 그릇을 전해 줄 아름다운 후원자를 찾습니다.

밥사랑공동체는 서울 영등포역 광장 노숙인에게 섬김과 나눔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 경제적으로 부족한 사람, 육체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후원구좌>
우리은행 891-04-100397 <예금주 : 한국기독교복지협회>
농협     023-01-497822 <예금주 : 한국기독교복지협회>
밥사랑 공동체 연락처 02)2678-2642  

글 김세형·사진 송원제 기자/fax123@ilyosisa.co.kr

밥사랑공동체 대표 박희돈 목사는 누구  
밥사랑공동체 대표를 맡고 있는 박희돈 목사는 철학박사, 사회복지사 1급, 청각3급 중도장애인으로 거리 노숙인의 예배공동체 길벗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으며, 거리의 노숙인들로부터 ‘큰머슴’으로 불린다. 따뜻한 밥을 통해 그보다 더 큰사랑을 나누는 슈퍼바이저인 박 목사는 비영리단체인 ‘밥사랑공동체’를 정부 지원 없이 순수한 민간형태로 6년여간 이어오고 있으며, 노숙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