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공간
서재는 나에게 꿈이 이루어지는 곳인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서재를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언젠가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게 되어 살아가다 서재를 갖게 되고, 그 서재가 계속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인생이 끝날 때쯤 돌아보았을 때 그 서재가 나의 발자취, 내 꿈의 발자취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언젠가 나한테 서재가 생겼더라고요. 공부를 안 한 직업 치고는 꽤 책이 많은 것 같아요. 특별히 정리는 안하고 있어요. 여기쯤에 중국에 관한 책들, 맨 위쪽에는 전집류, 이런 식으로 모아놓긴 했는데, 잘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대충 꽂아놓고 살아요. 그래도 이렇게 여러 번 보다 보면 대충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알아요. 그래서 별로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책을 나에게 맞추어 읽는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습관적으로 책을 보는 것 같아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뽑아 드는 책이 달라져요.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싶으면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싶으면 역사에 관한 책을 뽑아 들어요. 특별하게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내 직업이 그렇듯이 다양하게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서 보고 싶은 분야의 책이 눈에 띄면 보곤 합니다. 트렌드를 알아야 할 때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책이나 우리 국민들이 좋아하는 책은 빠지지 않고 챙겨서 봅니다. 예를 들어 요즘 화제가 되었던 <스티브 잡스>라든지, 얼마 전 돌풍을 일으킨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책을 챙겨 보고, 그것과 연관 지어서 ‘왜 사람들이 이 책을 보는지’ 생각하면서 그 책과 관련이 있는 책들을 좀 더 찾아서 읽죠. 흥미를 느껴서 한 글자도 안 빠뜨리고 몇 번씩 읽는 책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데 10분도 안 걸리는 책도 있어요. 어려운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자기가 이해되고 흥미를 느끼는 부분을 골라 읽으면, 아무리 어려운 책도 한 권 읽는 게 어렵지 않아요. 내가 책에 맞추는 게 아니고 책을 나한테 맞추는 거죠.
새로운 생각에 모티브를 주는 책

저는 아이디어를 정말 다양한 소스로부터 얻어요. 잡지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많고, 그 외에도 신문이나 영화, 비디오, 전문적인 책들도 많이 봐요. (여러 가지 매체 중에서) 일반적인 책들로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요. 무엇인가 한 가지를 깊이 생각하고, 그 생각들이 내 머리를 꽉 채우고 있을 때, (서재나 서점에서) 그 생각을 열어줄 수 있을만한 제목의 책이 눈에 띄면 굉장히 강렬한 임팩트를 받게 되죠. 그런 경우, 그 책이 구체적이 아이디어를 주는 건 아니지만, 모티브를 주는 것은 분명해요. (앞서도 말했듯이) 저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책을 ‘보는’ 것은 좋아해요. 이 방에서 새벽에나 밤늦게 혼자 책 제목을 쭉 봅니다. 이런 것이 아마도 나한테 무의식적인 영감 같은 것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 재능은 공적인 목적으로 쓰고 싶다
(남미에) 가기 전에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케치북 한 권만 들고 떠났습니다. 하루 종일 여행을 하다가 숙소에 밤늦게 돌아가서 그림을 그렸는데요. 매일 한 장씩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는데, 한 달이 지나고 어느 틈엔가 스케치북을 꺼내 들 때마다 그림이 수북이 많아지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평소에 그림을 그리거나 연습을 해 본 적은 없어요. 이번처럼 특별하게 그림을 그려야 되겠다 하는 순간만 그림을 그리거든요. 중고등학교 때 미술시간 외에는 배워본 적도 없고 그려본 적도 없습니다. 사실 저희 증조할아버지께서 그림을 잘 그리셨어요. 대대로 내려오는 열 두 폭 병풍이 있는데, 그 병풍의 산수화도 직접 그리셨어요. 제 주위에 형제들이나 아버지 대에나 그런 미술적인 재능을 누구도 물려받지 않았는데 그것을 제가 받았어요. 그래서 저는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게 어렵지 않더라고요. 제가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이런 재능 같은 것은 어디 가서 자랑할게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거에요. 내가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라 물려받은 재능이기에 이런 것은 자랑할 것도 아니고 이것으로 사적인 이익을 취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림 덕분에 제 책(소금사막)이 팔리고 인세가 생긴다면 그것을 내가 잘 먹고 잘사는데 써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으로 생긴 수익은 공적인 목적으로 써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르를 파괴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꿈꾸다
(놓치기 쉬운 사회의 단면을 포착하는) 비결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요. 예능 프로그램은 재미를 추구하는 연예 오락 프로그램이지만, 저는 처음 기획할 때부터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웃기려고 하지 않아요. 오락 프로그램일지라도 진지하게 접근하는 방식이 사회적인 흐름을 고려하게 하고, 단면을 놓치지 않게 만든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계속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겠지만 굳이 장르를 따진다면 ‘장르 파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고, 다큐멘터리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보아오던 그런 류의 다큐멘터리가 아닌 김영희 류의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재미있게 만들면 시청자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해서 제 스타일대로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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