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안식처, 서재
저에게 서재는 '영혼의 거실' 혹은 '교실' 같은 공간입니다. 서재라는 공간은, 마치 거실에서처럼 영혼이 편하게 머물며 쉬기도 하고, 잠이 들거나, TV도 보면서, 어떤 새로운 것이 태어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영혼의 거실'이라고 정의 했고요. '교실' 이라고도 정의한 것은 서재에는 어쩐지 만나 뵙고 싶고, 생각 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실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비교하고 생각하며 책 읽기
시간이 나는 대로, 밥을 먹을 때에도, 또는 음악을 들을 때나 잠자기 전에도 책을 읽습니다. 잠을 잘 때를 빼고는 거의 책을 들고 있어요. 읽는 책들은 대개 인문학 책들이 많은데, 그때그때 관심이 가는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전문가나 학자들이 쓴 책들을 주로 골라서 읽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많이 알고 있는 분들이 쓴 글은 이해하기도 참 쉽고, 어떤 경우에는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해서 심미적인 즐거움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죠. 책을 읽다가 마음에 남는 곳은 접어 놓거나 뭘 끼워 두는데, 요즘은 그런 곳이 하도 많아져서 아예 연필을 들고 줄을 칩니다. 그리고 나중에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줄을 친 부분을 찾아서 메모를 하거나 또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렇게 하면, 읽었던 책과 인접한 다른 책을 읽었을 때 (줄을 친 부분을 비교해보며) 새로운 관점이 생겨나기도 하고요. 두 책간의 논지가 부딪히거나 결합되면서 조금 더 넓고 깊은 관점이 생기기도 합니다.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저의 책 읽는 습관입니다.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숙명을 가진 존재

책을 읽을 때 제일 집중이 잘 되는 공간은 기차나 비행기 안입니다. 그런 공간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집중이 잘돼요. 그래서 어딘가 여행을 가거나 할 때는 이동하는 시간에 맞춰서 적당한 수량의 책을 준비해서 갑니다. 그러다 보니 여행간 장소와 여행지에서 경험했던 일과 그때 읽었던 책들이 결부가 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여행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직업이 작가인 사람들은 아마도 여행을 많이 할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 작가들은 어떤 장소에 있느냐 어떤 자연 환경 속에 있느냐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작가가 어떤 작품을 쓸 때는 그 작품을 쓰는 장소나, 환경에서 기운이라는 잉크를 뽑아 쓰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기운을 뽑아서 다 쓰고 나면 화전민처럼 또 다른 기운이 있는 곳으로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숙명을 가진 존재가 바로 작가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감정을 나누는 글쓰기의 힘
글쓰기는 마음과 느낌을 나누는 인간만의 지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을 나누고 느낌을 나눈다는 것은 기쁨 슬픔 외로움과 같은 모든 감정을 나눈다는 것이죠. 통속적인 말 같지만,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져서 결국 으스러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한 감정을 그대로 나누는 하나의 도구로서 문학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문학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다른 예술에 비해서 특별히 지성적인 예술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정신의 성장 발달에 도움이 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아마 장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문어체 표현으로의 변화
(오랜 세월 글을 써오면서) 제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나이가 조금씩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말수가 줄었어요. 등장하는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소설을 끌고 나가던 것에서, 차츰 문장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 그 동안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 소설이 조금 더 문어체 쪽으로 가까워졌다는 것이겠죠. 제가 소설을 쓰기 전에 시를 썼기 때문에, 초기에는 주인공이나 등장하는 인물의 입을 빌어서 직접 발화하게 했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러한 방식으로부터 조금은 멀어진 것 같습니다. 작품 속 수많은 캐릭터가 있지만,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에 애착이 갑니다. 가령 이번에 나온 소설에서 가장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여산’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지금의 저랑 나이도 비슷하고 성격도 좀 비슷한 것 같고, 코를 고는 것도 비슷하고,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갑니다.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파
제가 어릴 때 저희 집에는 저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어른 같은 누나들과 고모, 할머니, 어머니 이런 여성들이 많았어요. 제가 무슨 일을 하면 여성들한테 즉시 발각되어서 혼이 나고 해서,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여성을 존경하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거의 못 썼어요. 단편소설 중에 한편 있을까 하는 그런 정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런 여성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아주 아름답고 지혜로우며, 용감한 여성이 주인공으로 여럿 등장하는 소설을 한번 써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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