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나만의 공간, 서재
서재란 골방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골방이라고 하면 상당히 은밀한 느낌이 들잖아요. 제 서재는 은밀한 저만의 공간이기 때문에, 이 곳에서는 내가 무엇을 하거나 어떤 생각을 해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에게 서재는 골방과 같은 공간이에요. 실제로도 아주 작고 소박한 공간이에요. 좋게 말하면 아담한 공간이고요. 이 안에서 저는 번역 일도 하고 여러 가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어요.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은, 제가 일본 문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주로 일본 문학에 대한 책이 대부분이에요. 그리고 일본에 관계된 번역서들이 있고요. 또 제가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국문학 관련 책들도 있어요. 그런 책들이 어느 정도 분류가 되어있는 상태예요.

습관이 되어버린 책 읽기

책은 주로 쉴 때 읽어요. 습관적으로 책을 읽는 편인데, 잠들기 전에 두 시간 정도는 책을 읽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앉아서 책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주로 누워서 읽네요. 즐겨있는 책은 아무래도 소설이에요. 최근에는 여행을 가고 싶어서 여행관련 서적을 상당히 많이 읽고 있어요.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딱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어요. 우선, 저의 취향이나 관심사와 상관없이 필요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 있고요, 또 하나는 오로지 저만을 위한 책이에요. 조금 전에 말씀 드렸던 여행 서적이라든지 제가 좋아하는 경향의 소설 같은 것이죠. (책 읽기가 번역 일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된다라고 꼬집어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책으로 얻은 양분이 내 안에 어딘가에 쌓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번역 작업을 할 때, 훨씬 더 감각적으로 언어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하루키 소설의 자유로움에 이끌리다
번역가가 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은 한 것은 아무래도 무라카미 하루키이죠. 일본 문학가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학업 때문에 일본 현대문학까지 읽을 여유는 없었어요.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현대문학을 읽게 되었고, 처음 접하게 된 일본 현대문학 작품이 바로 하루키 소설이었어요. 특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라는 작품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재미를 우리나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으로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실천하게 된 것이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라는 책에서 느낀 재미는, 그 전에 제가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들에서 느꼈던 재미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었어요. 제가 70년대에서 80년대 넘어가는 시기에 국문학을 공부했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는 시대적으로 문학이 틀 안에 많이 갇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것을 비교할 수 있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겠죠. 그런데 하루키 작품에서는 우리나라 작품과는 다른, 정형성이랄까 시대가 마련해놓은 틀 같은 것에서 벗어난 굉장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울고 웃으며, 꿈을 꾸는 번역 작업
저는 특정 작가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어떤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기억에 남는 작품은 사실 너무너무 많아요.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그때의 나였기 때문에, 다 소중한 것 같아요. 가네시로카즈키라는 재일교포 작가가 있어요. 그 작가는 코믹 소설을 많이 썼는데, 유일하게 연애소설을 쓴 적이 있어요. 우리가 연애소설이라고 하면 흔히 여자의 연애소설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남자의 연애소설을 쓴 거예요. 그의 <연애소설>이라는 작품을 번역 할 때, 남자의 순정과 사랑의 슬픔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정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작업했었어요. 또 하루키 작품을 번역할 때는, 막 깔깔거리고 신나게 웃으며 작업했던 적도 있었고요. 그리고 에쿠니가오리의 유명한 소설이죠, <냉정과 열정 사이>에는 나이 많은 남자가 나오는데, 그 남자가 여자를 거의 보호자 차원에서 완전 품는 스타일이잖아요. 그 작품을 작업하면서는 나한테도 이런 남자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었고요. 요시모토 바나나는 굉장히 음식을 좋아해서 소설 속에 레스토랑이 많이 등장해요. 주인공들이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면, 나도 이런 레스토랑 하나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하죠. 저도 번역 작업을 하면서 소설세계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꿈을 꾸고 그러는 것이죠.
내 안의 어려움을 극복하다
최근에 깨닫게 된 것인데요, 번역 작업 할 때의 어려움을 저는 항상 외적인 것에서, 제 바깥에서 찾았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어려움이란 것은 제 안에 있더라고요. 제 자신이 혼란스러울 때 그래서 육체적으로도 에너지가 떨어질 때, 그때 일을 못하더라고요. 언어는 사회적인 것이라서 시대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의 언어는 은어도 많아서 번역하기 어렵지 않냐고 말씀들을 많이 하세요. 그런데 그러한 외부적 요인들은 상당히 물리적인 것이에요. 그래서 머리로 노력하면 되는 문제예요. 그런데 내 안에서 에너지가 생기지 않고 혼란스러울 때는 작품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결국 일을 못하게 되더라고요. 가장 힘든 것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된 것이죠. 그래서 요즘에는 항상 정신적인 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야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지고 또 건강한 작업도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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