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 나무처럼 뿌리내리고 있는 곳
서재는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꿈꾸는 곳입니다. 잠자는 곳은 아니지만, 나는 이 방에서 아주 많은 꿈을 꿔 오고 있습니다. 이 방에 있는 책들은 아주 오래된 책도 있고, 최근에 나온 책도 있는데요, 나는 이 수많은 책 속에 묻혀서 살고 있습니다. 지하실에는 주로 전집류들을 모아둔 서고가 있는데요 필요할 때는 지하실에 가서 찾아와서 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대체로 이 방안에 있는 여러 영역에 걸쳐있는 지적인 성과들과 늘 만나고 있지요. 도서관의 분류법 같은 건 여기에 적용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분류할 줄도 모르고요. 그저 내 마음대로, 풀이 어디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나무가 어디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 둘 쌓여서 자기 세계를 이루고 있지요.

나를 끊임없이 자라게 하는 책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 같은 사람은 도서관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라지 않았습니까? 또 프랑스의 사르트르 같은 사람은 외갓집의 육중한 서재의 모든 책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지요. 그런데 나는 그들과는 정 반대의 환경에서, 마을에 책이 몇 권밖에 떠돌지 않는 그런 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나면서 폐허에서는 당연히 책 같은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고, 책이 곱게 간직되어 있는 곳이 어디 하나 없었지요. 그런데다가 또 산 생활 – 고은 시인은 한 때 불교에 귀의한 적이 있다 - 에서 언어와 문자를 부정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전혀 책과 가까이 하지 못했고, 또 중기에도 책의 의미를 부정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밤 중에 태워버린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책만이 내 종교이고, 책 속에 들어있는 세계만이 나를 건져주고, 또 내가 꿈꾸게 하고 나를 끊임없이 자라나게 하는 존재입니다.
학생, 끊임없이 배우는 생명
인간은 타고난 것의 중요성과 함께 타고나지 않은 것의 중요성을 개척해야 합니다. 그게 공부지요. 학생이라는 말을 나는 아주 좋아합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생명이라는 말이지요. 독서나 공부는 학부 4학년, 중학교 3학년, 고교 3학년, 혹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6년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평생 숨이 넘어갈 때까지가 공부의 기간이라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늘 내가 타고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를 하지요. 어떤 책이든지 거기에는 고귀한 가치가 반드시 금강석처럼 빛나고 있어요. 책을 닫아두면 그 속에 있는 언어는 시체일 뿐입니다. 책을 열어서 나에게 왔을 때 비로소 이 세계가 살아나지요. 책처럼 매혹적인 것은 없어요. 책을 펴면 살아나고, 애기처럼 태어나서 생명이 자라나지요. 책은 나에게 어떤 생명이 왕성하게 지속되는 숲 속이고, 그 속에 내가 있어요.
시와 나는 지독히 사랑하는 사이

시는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 그 이상의 것입니다. 대체로 우리가 편법으로 분류할 때 시는 문학의 한 장르라고 얘기하는데요. 시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문학 이전, 이후, 또 문학 이외의 어떤 것이지요. 그래서 시라고 하는 것은 한 장르의 골짜기에 처박아 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뭐라고 이름 지을 수 없는 그 어떤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시학과 시론에서 시를 정의하고 있습니다만, 나는 그 수많은 정의들을 믿지 않고 나 역시도 시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으면 모른다는 대답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시 뿐 아니라, 소설, 평론집 등 여러 장르게 걸쳐서 장르에 구애 없이 글을 썼습니다만, 지금은 대체로 시로 귀결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내 시의 행방이 이제까지 가지 않은 길을 가야 된다는 사명에 불타고 있어요. 여전히 나는 시를 사랑하고, 또 시가 나를 지독하게 사랑해주고 그래서 우리는 헤어질 수가 없는 그런 상태입니다.
나에게 가장 행복한 이름은 '시인'
한국에 현존하는 시인이 몇만 명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 명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십만 명이라고도 하죠. 헤아리는 원칙, 시각에 의해서 경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 수많은 시인 중에 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런 시인 중의 한 명으로서 한국적 정서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민족시인이라는 말도 오래 전부터 들었고, 국민시인이나 국가시인, 혹은 세계의 시인이라는 말도 들었는데요. 나에게 가장 행복한 이름은 그냥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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