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은 전남 순천의 조계산 중턱에 ‘불일암(佛日庵)’을 지어 암자와 그 둘레를 직접 가꾸고 다듬었고, 언젠가부터 자신의 거처를 ‘수류화개실(水流花開室)’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에 따르면 말 그대로 ‘물 흐르고 꽃 피는 곳’이라 부를 만큼 아름답다고 합니다.
법정 스님은 <텅 빈 충만>에서 당신의 거처에 붙인 ‘수류화개’라 문구를 중국 송대의 시인이자 서예가 황산곡(黃山谷)의 시에서 따왔다고 말합니다.
황산곡의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구만리 푸른 하늘에 (萬里靑天)
구름 일고 비 내리네 (雲起雨來)
빈 산에 사람 그림자 없이 (空山無人)
물 흐르고 꽃이 피더라 (水流花開)
법정 스님은 “‘수류화개실’이란 내 거처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스님 성격의 일단과 마음이 무엇에 끌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몇 자 안 되는 글귀에 푸른 하늘과 구름과 비, 산과 사람과 물과 꽃이 들어 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직선적인 성미에 맞는 글이다. 황산곡의 서체처럼 활달하고 기상이 있는 내용이다.”
어느 날 한 젊은이와 찾아와 스님에게 ‘수류화개실’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스님은 “네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라고 답했습니다. 스님 책을 읽고 궁금해서 물었을 청년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텅 빈 충만>을 읽으며 ‘수류화개’에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는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이 ‘물 흐르고 꽃 피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은 말합니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곳이 어디이겠는가? 물론 산에는 꽃이 피고 물이 흐른다. 그러나 꽃이 피고 물이 흐르는 곳이 굳이 산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 설사 도시의 시멘트 상자 속 같은 아파트일지라도 살 줄 아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 삶에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고 그 둘레에는 늘 살아 있는 맑은 물이 흐를 것이다.
사람은 어디서 무슨 일에 종사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살건 간에 자기 삶 속에 꽃을 피우고 물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하루 사는 일이 무료하고 지겹고 시들해지고 만다. 자기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를 두고 딴 데서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헛수고일 뿐.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 지금 바로 그 자리가 자기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자기답게 살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남이 아닌 내 안에서 물이 흐르고 꽃을 피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스님의 표현을 빌리면 “자기 나름의 눈빛과 목소리와 성격과 특성을 지녔다는 것은, 그 눈빛과 목소리와 성격과 특성대로 살라는 뜻”입니다. 스님은 말합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살든 그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물이 흘러야 막히지 않고 팍팍하지 않으며 침체되지 않는다. 물은 한곳에 고이면 그 생기를 잃고 부패하게 마련이다. 강물처럼 어디에고 갇히지 않고 영원히 흐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꽃이 피어나는 것은 생명의 신비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특성과 잠재력이 꽃으로 피어남으로써 그 빛깔과 향기와 모양이 둘레를 환하게 비춘다. 그 꽃은 자신이 지닌 특성대로 피어나야 한다. 만약 모란이 장미꽃을 닮으려고 하거나 매화가 벚꽃을 흉내 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모란과 매화의 비극일 뿐 아니라 둘레에 꼴불견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여기서 자기 자신의 길을 찾고 만들어가는 사람의 삶에 맑은 물이 흐르고 향기로운 꽃이 핀다는 가르침입니다. 법정 스님은 1986년에 쓴 글에서 자신의 거처와 그 둘레에 꽃이 피고 물이 흐르게 하고, 자신의 내면, 즉 “속뜰에도 꽃이 피고 물이 흐르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나 또한 남이 아닌 나답게 살며, ‘훗날 저기’가 아닌 ‘지금 여기’를 삶의 바탕으로 삼겠다고 다짐합니다.
<<구본형의 변화경영연구소 홍승완 글중에서>>
'책 읽는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의 쉼표 (0) | 2013.08.22 |
---|---|
욕망을 부르는 향기 (0) | 2013.08.16 |
내 몸이 의사다 (0) | 2013.07.11 |
다섯친구 (0) | 2013.07.11 |
책 속의 향기가 운명을 바꾼다. (0) | 2013.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