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융세 개인展

Reflets_한지에 먹,구아슈,아크릴물감_140x137cm_2003
인사아트센터
2008. 6.11(수) ▶ 2008. 6. 24(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 인사아트센터 1층 | 02-736-1020
http://www.ganaart.com

Dunes_한지에 먹,구아슈,아크릴물감_200x135cm_2006
고암 이응로 화백의 아들이자, 독창적인 한지 꼴라쥬 작업으로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중견작가 이융세(1956-)의 6년만의 국내 개인전
고암 이응로 화백의 아들이자, 현재 독창적인 한지 작업으로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중인 중견작가 이융세(1956-)의 6년만의 국내 개인전에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파리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와 에콜 드 보자르를 졸업한 작가는 작업 초기 ‘토템’을 주제로 한 조각 작업에 몰두하다가, 1982년 목판을 이용한 평면작업으로 변화한 이후부터 나무판 위에 한지를 두드리고 구겨서 붙여나가는 입체적인 질감의 독특한 꼴라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한지 속으로 자연스럽게 번져들어가는 색의 농담을 통해 물, 잎, 나무, 시냇물, 바다 등의 상징적인 자연의 모습과 무한히 펼쳐지는 소우주의 추상적인 풍경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작업의 재료와 기법, 주제 등은 프랑스 및 유럽 화단에서 ‘한국적인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Braise_한지에 먹,구아슈,아크릴물감_200x135cm_2008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작인 한지 꼴라쥬 작품 25여점을 전시한다. 2살 때 가족들과 함께 파리로 떠나 지금까지 그 곳에서 생활하면서 서양 미술의 감수성을 교육받았고 또한 아버지이자 예술적 스승이었던 고암 이응로 선생의 영향으로 동양 미술의 정신을 몸소 체득한 이융세의 깊은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Bleu_한지에 먹,구아슈,아크릴물감_162x165cm_1998
신소연-그것을 할 뿐!
박 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작가는 화면에 다양한 재료를 구사해 질감을 지닌 형상을 올려놓았다. 그 이미지는 일상에서 받은 인상, 감정의 상태나 구체적인 그릇의 형상들이다. 자연 풍경이나 꽃에서 연유하는 단촐한 이미지와 차와 연관된 다기와 그릇 등이다. 아울러 사계절의 변화, 자연의 순환과 흐름 등의 변화를 색채로 표상하고 있다. 그 대상은 결국 작가의 명상적, 관조적 소재, 대상들인 셈이다.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관조하고 생각에 잠기는 것, 차를 마시면서 찻잔을 들여다보는 일, 한 송이 꽃을 통해 우주자연의 본질을 헤아리는 일이란 사실 동양회화, 예술의 오랜 전통이다.
그려진 화면에 올려진 한지는 마치 ‘발’을 드리운 것 마냥 자리했다. 틈 사이로 바탕 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콜라주 자체가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 보인다. 몇 겹의 화면이자 이중의 이미지가 동시에 진동한다. 혼합재료로 이루어진 바탕면의 질감과 한지의 물성이 겹쳐지면서 다분히 촉각적이자 저부조의 화면을 만들어 보인다. 한지란 재료는 그림이 그려지는 바탕이 되기도 하지만 탈평면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한지 자체가 지닌 투명한 색상과 은은한 빛과 미세한 떨림, 그리고 표면에 까칠하게 일어선 돌기가 자아내는 느낌은 조금은 아련하고 침잠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다분히 명상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고 싶어한다.

Meditation_193.9×130.3(3ea)cm_한지, mixed media_2007
사각형의 꼴들이 사각형의 공간을 채워나가면서 화면 안에 무수한 화면/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나이면서도 무한한 화면이다. 무한하면서도 결국 하나인 화면이다. 셀 수 없는 그 작은 면들은 그만큼의 시간과 공간을 증거하면서 무한히 지속되어 나간다. 한 마음과 또 한 마음, 다음 한 마음이 연속된다. 이 생각과 저 생각, 또 다른 생각이 줄을 잇다 보면 이내 그 생각이란 것 자체가 슬그머니 흩어진다. 그런가하면 마치 바람결이나 물살처럼 혹은 빛의 파장이나 선율처럼 흐른다. 옆으로 리듬감을 가지면서 이어져나가는 선들이, 한지의 단면들이 선을 이루고 아련하게 형태를 떠올려준다. 이미지였다가 종이라는 물성이었다가 다시 이미지와 물질 그 사이를 넘나든다. 주어진 화면/종이를 다시 한지로 덮어나간다는 것은 그린 것을 애써 지우면서 다시 표현하는 다분히 모순적인 행위이다. 아울러 그것은 종이의 단면을 새로운 종이로 대체하고 환생하는 일이다. 마치 허물을 벗듯이, 그리고 새로운 피부를 성형하듯이 무슨 의식과도 같이 한지를 붙여나간다. 작은 한지를 일정한 간격으로, 혹은 다양한 차이를 지닌 꼴로 하나씩 붙여나가는 것은 시간을 헤아리거나 그 시간을 무화시켜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무수한 반복이란 결국 동일한 일을 통해서 시간의 차이를 지워나가는 것은 아닐까?

Meditation_106×45.5cm_한지, mixed media_2009
그렇게 한지를 정성껏 붙이고 시간을 지우고, 이기고 결국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이며 목적론적인 일을 순간 망실시키려는 의도를 내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분히 명상적이며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체득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른바 선적인 경지를 체득하고자 하는 의식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작가가 작업행위를 하는 주된 목적이기도 하다.
선禪이란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부로 향해 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부로 수렴하는 일이다. 자기 안의 광활한 공간으로 모든 것을 응축시키는 것, 그러기 위해 명상을 한다. 명상이란 대뇌 신피질의 활동이 정지했을 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며 낡은 피질이 깨어나도록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호흡법에 의존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런가하면 불교에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생각이 끊어질 때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바로 그러한 순간에 몸을 내밀고 나타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아름다움은 ‘움직이지 않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이를 흔히 삼매(Samadhi)라고 부른다. 감정이나 외부의 조건은 항상 일정하지 않아서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중심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간순간 움직이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불가에서는 말한다. 무엇을 하든 다만 ‘그것을 할 뿐’이다. 작가는 다만 종이를 반복해서 붙여나갈 뿐이다. 네모난 형상을 비우고 채우는 것을 무한히 반복할 뿐이다. 칠하고 덮고 지우고 가리는 일을 마냥 하염없이 반복한다. 그것은 자신의 번잡한 생각을 끊는 일이자 무심한 행위 속에서, 단조로워 보이는 콜라쥬의 집적 안에서 모종의 정신적 충일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또는 재료와 몸의 수행을 관조함으로써 어떤 순간의 황홀을 경험하고자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럴 것이다.

Meditation_cm_한지, mixed media_2009

Meditation_42×127cm_한지, mixed media_2009

Meditation(명상)_72.3×116.5cm_캔버스 한지, mixed media_2009